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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역동성은 정신의 여러 가지 구조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배분과 에너지 이동에 관한 것이다. 융 학파의 정신 역동성은 물리학에서 빌려 온 '평형의 원리'와 '엔트로피 원리'를 기본 원리로 사용한다.
평형의 원리는 물리학에서 열역학 제1 법칙, 또는 에너지 보존 법칙과도 같다. 이 원리에 의하면 정신적 요소의 에너지양이 감소하면 감소한 양의 에너지가 다른 정신적 요소에서 나타난다. 에너지는 한 위치에서 다른 위치로 이동했을 뿐(다른 요소들에 배분) 정신에서 에너지 소실은 없다는 뜻이다. 물질적인 것으로 설명하자면 한 사람이 카페에 들어가 4500원짜리 커피를 산다 치자. 커피를 얻기 위해 내가 지불한 4500원은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커피라는 최종 생산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모든 노동 및 제조의 요소들에 배분된 것이다. 이처럼 어떤 가치의 에너지는 다른 가치로 전환될 뿐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의 실생활에서도 우리의 정신 에너지가 사라지지 않고 이동된다는 것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여자아이가 인형, 소꿉놀이, 그림그리기 등에 흥미를 잃기 시작하면 또 다른 흥미의 대상이 생기는 것과 같다. 어떤 대상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흥미의 대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간혹 어떤 양의 에너지가 평형의 원리 내에 작동하지 않은 듯 보일 때도 있다. 이 경우 의식적 자아에서 개인 무의식 또는 집단무의식으로 에너지가 이전된 경우이다. 의식에서 무의식으로의 전환에 대해 알려진 예는 아이가 부모에게서 독립하기 시작할 때 나타나는데 그때 아이는 대리 부모에 대한 환상을 갖기 시작하며 선생님, 부모님의 오랜 친구 등과 같은 현실 세계 인물에게 투사하고 이는 무의식적 가치가 의식적 가치가 갖고 있던 것과 같은 특징을 가지게 되는 방법을 설명해준다. 행동에 대해 덜 극적이고 명백하지 않은 무의식적 가치의 영향은 끊임없이 작용하며 꿈의 내용을 결정하기도 한다. 공포증, 강박관념, 강박 행위 등의 신경증적 증상과 환각, 망상, 극단적 현실 도피 등의 정신병의 상태도 무의식적 가치로 인한 것인데 이는 정신병원이나 정신과 진료실에서 인격의 정신 역동성을 분명하게 관찰할 수 있는 이유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는 범죄, 전쟁, 편견, 차별 등 다양한 사회 현상이나 예술, 신화, 종교, 신비주의 등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고 융은 말한다. 항상 변치 않은 값을 가지는 평형의 원리로 인해 한정된 양의 에너지를 놓고 여러 인격 구조 사이에 경쟁하는 일이 일어난다. 특정 구조가 많은 에너지를 얻으면, 다른 구조는 그만큼 적은 에너지를 보유할 수밖에 없다.
융은 다른 구조로 에너지 전이가 발생할 경우, 이전 구조의 몇 가지 특성이 두 번째 구조로 전달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권력 콤플렉스의 에너지가 성적인 콤플렉스로 넘어갈 경우, 권력에 존재하던 가치의 특정한 측면이 성적 가치에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 당사자의 성행위에서는 성 상대방을 지배하고 싶어 하는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콤플렉스 역시 독자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기에 첫 번째 콤플렉스의 모든 특징이 전이되리라 가정해서는 안 된다고 융은 경고한다. 융은 “어떤 정신적 활동의 리비도가 본질적으로 물질적인 관심으로 이행되는 경우가 있다. 당사자는 새로운 구조 역시 특성상 정신적이라 믿고 싶겠지만 그것은 잘못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융은 둘 사이에 비슷한 점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본질적으로는 서로 다르다고 말한다. 정리하자면, 평형의 원리는 정신 에너지가 정신의 어떤 요소 또는 구조에서 다른 요소 또는 구조로 전이되어도 그 에너지의 가치는 언제나 동일함과 정신 에너지는 소멸하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정신 에너지는 경험에 의해 더해질 수 있지만 정신에서 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평형의 원리가 체계 내에서의 교류를 설명한다면, 물리학에서 사용하는 에너지가 흐르는 방향을 뜻하는 열역학 제2 법칙, 엔트로피 원리에 근거해 에너지가 흐르는 방향을 설명한다. 엔트로피 원리에 따르면, 서로 다른 온도를 가진 두 물체가 접촉하면 두 물체의 온도가 같아질 때까지 열에너지는 뜨거운 물체에서 찬 물체로 흐른다. 수위가 다른 두 통이 수로로 연결되어 있으면 물은 항상 물 높이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일반화하면 두 물체가 접해 있을 때 에너지는 강한 물체에서 약한 물체 쪽으로 흐르게 되는데 엔트로피 원리에 의해 힘의 평형이 생기는 것이다. 융은 인격의 역학을 서술하기 위해 엔트로피 원리를 응용했는데, 정신 속에서 에너지의 배분은 정신의 모든 구조 사이의 평형 혹은 균형을 추구하고, 완전히 균형 잡힌 체계가 이루어질 때까지 전 인격 사이의 에너지 교류를 조절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항상 외계로부터 정신에 유입되는 새로운 에너지가 있기 때문에 이것이 완벽하게 실현되지 않는다.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는 청소년기는 그 시기의 생리학적 변화나 환경 및 인간관계의 변화 등을 통해 겪게 되는 새로운 경험들은 대량의 에너지가 정신으로 흘러 들어오게 되고 끊임없이 가치 변화가 생기기 때문에 정신이 균형 상태에 도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
융은 매우 지배적인 어떤 가치가 갑자기 정반대 가치로 전환되는 경우도 언급한다. 예를 들어 강한 권력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갑자기 비굴하고 굴종적인 사람으로 변할 수 있고, 페르소나가 매우 발달하여 있는 가면을 벗어버리고 사회의 골칫덩어리가 되기도 한다. 융은 정신분석학자로서 환자의 인격이 갑자기 변하는 것을 관찰할 기회가 많이 있었는데 이러한 급격한 인격 및 행동의 변화는 엔트로피의 작용 원리에서 비롯된다. 콤플렉스나 그 밖의 구조에 대량으로 축적되었던 에너지가 갑자기 그 콤플렉스에서 유출되어 그 대립물로 흘러 들어가 축적되는 경우이다.
[참고 문헌]
융 심리학 입문, 캘빈 S.홀, 버논 J.노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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